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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10일차_낯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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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Roman Grachev on Unsplash

처음으로 보인 것은 푸른 하늘이었다. 이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푸른 하늘이 눈앞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여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분명 전함이 폭발에 휩쓸렸다. 대피할 시간 따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마도 우리 전함의 폭발이 오랜 시간 멈춰있던 전쟁을 재발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현 수뇌부를 맡고 있는 제크론을 걱정했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몸은 폭발에 휘말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전함이 파괴될 정도의 폭발이면 사지가 멀쩡할 리가 없다. 그런데 내 팔다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10년 전, 쌩쌩하던 초입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여기는 마크로. 수신 가능한 곳 있는가?”

손목의 머지를 조작해보았지만 수신이 되는 곳은 없었다. 최소 근처에 적군도 아군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봐야겠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주 낯설진 않는 곳이었다. 푸르른 하늘이 넓게 펼쳐져있고 그 아래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커다란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초입시절도 전에 지구에 있을 때 봤던 풍경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별. 그렇지만 이제는 그곳에서 지낸 시간보다도 떠나 있던 시간이 더 길다.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지.”

여기가 어딘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다행이 다친 곳도 없고 체력도 있다. 지금 움직여서 쉴 곳을 찾고 먹을 거리를 찾아둬야 한다.

일단은 태양을 보고 대략적인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약간 기울어진 것을 보니 정오 이전이거나 정오가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움직일 시간은 충분하다.

방향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머지에 나침반 기능이 있었으니까. 사실 위치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침반이 큰 효용은 없겠지만 최소한 방향을 잃지는 않게 해줄 것이다.

일단은…… 남쪽으로 가자.”

방향을 정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중력이 무거울 법도 했는데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마치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걷던 중 시내를 마주쳤다. 다행이다. 수원을 확보하는 건 진지를 구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니까. 척 보기에도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머지를 활용해 성분을 분석해보았다. 지구에서 흔히 보던 물이었다.

이렇게 흐르는 물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피식 웃으며 양손 가득 물을 떠올려 입가로 가져갔다. 시원한 물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자 청량감이 몸을 휘감았다.

수통이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별다른 장비가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손목에 찬 머지와 제복 주머니의 신분증, 라이터 하나, 그리고 권총형 플로터와 휴대용 단도가 전부였다.

그 와중에 방전되지 않은 게 다행인지도.”

플로터의 잔량은 절반 정도 남은 것을 확인했다. 아마도 발사할 수 있는 건 십수발 정도. 위급상황이 닥쳤을 때 유일한 아군이 되어줄 녀석이다.

사냥을 해야 할 때도 말이지.”

고개를 들었을 때 들판 저편에서 뛰어다니는 짐승이 보였다. 아마도 사슴인 것 같았다.

 

숨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가보자 과연 사슴 다섯 마리가 무리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저 중 한마리만 잡아도 며칠 간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플로터를 사슴을 향해 겨눴다.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안심하고 있는 사슴을 조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존재가 그것을 막아서면 함부로 쏠 수는 없었다.

넌 뭐지?”

갑작스럽게 총구를 막아선 여인의 활이 나를 겨누고 있었다.


아르테미스의 숲에 들어선 주인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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