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_실험군
처음엔 사과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아삭한 식감과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곧 사과와는 좀 결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 식감은 사과라기 보다…….
“배에서 사과 맛이 나는 느낌?”
“향은?”
입안의 음식물을 모두 씹어 넘긴 후 이번엔 코를 가져다 댔다. 향은 분명 사과향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그냥 사과향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던 내 머릿속에 뭔가 한 가지 과일이 스쳐갔다.
“이거…… 복숭아향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요?”
“좋아. 성공이군.”
박사님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서류에 무언가를 기록했다. 뭐지. 방금 실험체가 된 것 같은데?
“그래서, 이게 사과 맞아요?”
박사님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우리 팀에서 6년째 연구해온 과일이라네.”
“……지금 사과가 아니라 과일이라고 부른 거 아세요?”
사과에서 배의 식감이나면서 복숭아향이 섞여 난다? 이게 정상일 리 없잖아. 의심의 눈초리로 박사님을 노려보았지만 박사님은 슬쩍 내 시선을 피하더니 사과……와 관련한 미상의 과일을 가지고 얼른 밖으로 나가려 했다.
“연구윤리. 잊으신 건 아니죠? 저는 알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내가 못 가게 막았지만.
“크흠. 곧 자료를 정리해서 넘기지.”
“아니, 자료만 보내면 땡입니까? 무슨 실험을 끝나고 나서 고지해요? 이거 정체가 뭐예요? 과일 명칭은? 부작용은 뭐 없어요?”
내가 몰아붙이듯 박사님을 붙잡고 말하자 박사님이 아주 적극적으로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인간이……?
“아니. 설마…… 지금 전혀 조사도 안 된 걸 제게 먹인 건 아니겠죠?”
“우리의 예측으로는 부작용 같은 건 없네요. 과일이니까.”
“……과일 중에서 임산부에게 좋지 않은 과일도 있긴 하죠. 얘를 들면 파인애플이라든가.”
그러자 박사님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그거 한 자리에서 몇 Kg씩 먹는 게 아니고선……. 아니, 근데 임산부에게 안 좋은 과일이 무슨 상관…….”
박사님이 말을 떠듬떠듬 이으면서 표정에 점차 경악이 깃들었다.
“자네……, 설마……?”
“임신 8주입니다.”
그제야 박사님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굳어버렸다.
“아, 아니, 그걸 왜 말을 안 했어?!”
“아직 안정기도 안 지났으니 지나고 나서 말하려고 했죠! 누가 대뜸 실험체로 쓸 줄 알았나?! 애당초 제가 임신을 안 했어도 당연히 피실험자에게 고지하고, 예상되는 부작용도 설명하고, 그 다음 동의를 얻어 진행하는 게 실험이잖아요!”
“아니……, 자네니까 괜찮을 줄 알았지…….”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이 박사의 목을 졸라버릴까 생각했지만, 일단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다음에 발생할 문제점을 모색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이며, 이 미상의 과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바로 이 박사이다.
“그래서 자세히 말해보세요. 제가 먹은 게 뭔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자 아직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는 건지 박사님이 살짝 문을 훔쳐보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먹은 과일은 사과에 배와 복숭아를 접목해 만든 거라고 했다. 이게 무슨 끔찍한 혼종이람. 일단 강제적인 유전자변형 같은 작업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일반 과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게 박사님의 설명이었다. 그런 거라면 다행인데……. 어째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지?
“진짜 그게 다예요? 사과나무에 배나무, 복숭아 나무를 접목하는데 6년이 걸렸다고요?”
“어……. 그거 말고는 별 거 없네. 우리가 개발 중인 비료를 같이 쓴 정도?”
진짜 이 박사 죽일까.
“그 비료는 뭔데요.”
“생장 속도를 올려주는 비료일세. 일반적으로 한 달 정도 걸릴 것이 보름이면 충분하지. 다만 촉진 성분이 그리 오래가진 못해서 한 달에 한 번은 주어야 하네.”
아니, 이 인간 어마어마한 걸 연구하고 있었잖아. 식물의 생장 속도를 두 배로 올리는 비료라니. 분명 이걸 연구하다가 접목 사과 같은 뜬금없는 걸 만든 것이 분명했다.
배랑 사과랑 복숭아의 접목이 가능할지 찾아보고 나중에 한 번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부작용으로 태아가 빨리 자라는 걸 생각했는데, 30분이 다 되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