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8일차_파티에서

제넬 2022. 4. 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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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aura Chouette on Unsplash

생긋 웃는 미소가 아름다운 아이였다. 백작이 회고하는 유니아는 그런 아이였다. 마치 별장에서 내려다본 바다에 햇빛이 반짝이면서 빛나 보이듯 그녀가 웃을 때는 그 주변까지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미소에 반하여 백작 자신은 쉽게 그녀에게 입 한 번 때지 못하고 금방 쑥스러워져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하지만 3년만에 만난 그녀에게선 차가운 시선만 가득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실 사교계에선 작년쯤 그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며 한동안 이슈가 되기도 했다. 백작 역시 그 소식에 그녀를 걱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편지를 보내 확인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소식은 금방 백작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특히 작년에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고로 백작위에 오르며 정신이 없던 때기도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니아 프레지아 영애.”

그렇게 말하며 백작은 가슴에 손을 대고 가볍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러자 유니아도 응답하듯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늦었지만 백작위에 오른 것을 축하 드립니다, 실브론 릴리 백작님.”

마치 외운 대사를 읊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왠지 쓴웃음이 나왔다.

말씀 감사합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그렇게 백작은 유니아를 스쳐갔다. 몇 번 보진 않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그녀였는데, 저렇게 가라앉은 분위기라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뿐이었다. 눈이 가던 영애라는 것 외에 특별한 점은 없었으니까. 그저 앞으로도 가끔 마주하게 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백작은 자리를 떴다.

 

이번 파티는 백작의 어머니인 피엘라 릴리의 생일을 기념하는 파티였다. 그렇기에 실브론 백작은 호스트로서 사람들을 맞이해야 했기에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곧 파티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왔다.

-!

맑은 유리소리가 홀을 울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자 잔을 들어 사람들을 집중 시킨 백작이 입을 열었다.

파티는 즐기고 계신가요? 저희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주시기 위해 모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인공도 아닌 제 말이 길어져 봐야 지루하기만 하겠죠. 어머니, 한 말씀 해 주시죠.”

백작이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하자 피엘라가 생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후후, 모여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굴곡이 꽤나 많은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 돌이켜보니 많은 축복도 함께 했음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이렇게나 장성한 아들이 훌륭히 백작위를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아들을 바라보는 피엘라의 시선에선 자부심이 느껴졌다.

, 그럼…….”

간단한 연사를 마치고 잔을 들어올리던 피엘라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굳었다. 그리고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무너졌다.

쨍그랑!

그녀가 들고 있던 잔이 깨지고 곧 풀썩하는 힘없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쓰러졌다.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아들인 실브론 백작이었다.

어머니!”

그가 잔을 던져버리고 달려가 자신의 어머니를 안아 올렸다. 하지만 정신을 잃은 피엘라는 창백한 안색으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일단 바로 눕혀요!”

갑작스런 일갈에 실브론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어느새인가 달려온 유니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뭐해요! 어머니 죽게 내버려둘 거예요?!”

다시 한번 날아드는 일갈에 깜짝 놀란 백작이 그녀의 말에 따랐다. 곧장 피엘라의 가슴께와 목에 손을 가져다 댄 유니아는 심정지를 확인하고 곧장 가슴압박을 시작했다. 갑작스런 유니아의 행동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영애 무슨……?”

온 몸을 조이는 코르셋부터 벗겨야 해요. 이러니 제대로 호흡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빨리 시녀든 누구든 불러와요!”

단호한 유니아의 외침에 실브론 백작은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정신을 가다듬은 백작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갑작스럽지만 어머니의 몸이 좋지 않아 오늘의 축배는 생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모자는 먼저 물러날 테니 파티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파티를 즐길 수 있을 리 없지만, 인사치레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선언하듯 말한 백작은 가슴압박을 이어가는 유니아를 가볍게 저지하며 직접 어머니를 안아 올렸다.

근처에 준비된 방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렇게 말한 실브론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유니아도 그를 따라 서둘러 준비된 방을 향했다.

 


로판 빙의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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